몽골 印象記
김승국
몽골에 처음 갔는데(여행기간: 2025년 11월 27~12월 4일) 몽골의 사회상을 기록하는 게 무리이지만,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 비망록 수준에서 몇 마디 남긴다. 초면의 인상이 강력하여 가장 정확할 수도 있지만...
1. 조악한 자연에 맞서 싸우며 自强不息하는 민초들의 생존 투쟁이 보기 좋았다. 울란바타르의 도심과 역에 (자본주의에서 흔한) 홈리스(노숙자)가 전혀 없음을 보고 민중들의 건투하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의 얼굴 표정이 순박하고 남을 도와주려는 태도를 보이는 듯했다. 지난 몇십 년간의 사회주의 체제 때의 공동체 의식이나 연대 의식이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면 오랜 세월 동안의 유목 생활에서 인간-자연의 일체감이 몸에 밴 생활의 유산을 지금까지 간직한 탓이 아닐지 짐작하기도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지도자⋅정치세력⋅지도층이 잘 이끌어 주면 살만한 나라가 될 듯했다. 현지 정치⋅사회 지도층이 정치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지만...
모두 혹한(영하 25~28도)을 이기며 악착같이 일하는 모습...한국인들이 악착같이 생활하는 모습과 닮은 것 같다. Erlyan에서 자민우드(몽골-중국 내몽고의 국경도시)로 가는 열차에서 만난 보부상 여인들의 입술 깨물고 살아가는 생존 투쟁이 살가왔다.
2. 몽골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
1) 한국인들이 몽골리안(몽골인의 후예)이어서인지 일단 얼굴과 용모가 비슷함. 형제같이 서로 친밀감이 든다.
2) Erlyan에서 자민우드 가는 기차에 (중국 물건을 사들여 몽골에 판매하는) 보부상들이 여럿 승차했는데… 그중 한 분의 여성이 작고하신 모친과 너무 닮아 가슴이 철렁했다. 그 보부상들 중 몇 명도 한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며…한국말을 더듬더듬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3) 자민우드 역에 정차한 열차 내에서 나를 검문하던 몽골의 사복 경찰이 다시 나의 좌석으로 되돌아와 한국말로 말하며(자신의 휴대전화에 입력한 몽골어를 변환한 한국말을 나에게 보여주며) 회화연습을 시도함… 조금 전의 사복 경찰다운 날카로운 눈빛이 사라지고 “나는 한국을 사랑해요”하는 눈빛을 보임. 그분도 한국에 몇 년간 체류했다고 함.
4) 내가 머문 Voyage 호텔의 여직원도 한국에 몇 년 체류한 적이 있다고 함. 한국말을 제법 할 줄 안다.
3. 한 때 한국 사업가들의 왕래가 잦았으나 요즘은 뜸한 듯
4. 몽골인들도 휴대전화⋅인터넷 붐
1) 울란바타르 시민 개개인의 손에 핸드폰이 있음
2) 한국처럼 몽골의 청소년들도 버스 안에서 검색하거나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봄
3) AI 시스템
몽골에도 chat GPT, Gemini가 널리 보급되어 활용 중임. 한국과 유통속도가 비슷한 듯.
5. 택시
1) 울란바타르 시내에 택시가 없다. 길가에 서서 손을 내밀면 일반 승용차가 다가와서 실어다 주고 택시 요금을 받음… 다른 지방도 마찬가지임
6. 지독한 매연 공해
울란바타르 시내의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이 너무 심한 데다, 몰려나온 차량들이 내뿜는 (연소 안 된) 매연의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모든 차량이 하얀색의 매연을 분출하니 시야가 가릴 정도이었다.
거기에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공장 등에서 분출하는 구름 같은 흰 연기 속의 오염된 매연이 더해져 … 마스크를 써도 코를 찌르는 매연 냄새가 지독하게 스며들었다. 몇 년 전에 사망한 고 조성범 동지가 울란바타르의 매연 공해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화석연료 대신 가스 등을 사용?)을 몽골 현지에서 전개했다고 나에게 들려준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몽골 인구의 절반인 150만 명이 산다는 울란바타르의 도시 계획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도로 차선을 넓히고 지하철을 개통하는 등의 근본적인 대책이 요망되는데, 계획은 있어도 재원이 부족하여 실행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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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몽골 여행을 하는 중에 한국의 뉴스를 보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내란 發 뉴스를 보지 않으니 행복했다. 이들 기사 중 거짓⋅위증⋅발뺌⋅책임 전가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라 그것들로부터의 절연이 너무 좋았다.
귀환 마지막 날 숙소에서 핸드폰을 열고 뉴스를 검색하니 다시 열불이 났다.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내란 세력을 척결하려는 유튜브를 보니 왕짜증이 났다. 스트레스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다시 혼돈의 도가니인 한국으로 귀환하려니 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