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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0 역사문화탐방이야기(31) - 유강 및 기계유씨묘역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


어쩌면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만큼 신기한 일도 없습니다.

두 다리로 걷고, 호흡하며 두 눈으로 모든 현상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며 개인의 기록을 써가며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변화


새로운 변혁, 혁명적 상황을 만들어 가려고 많은 사람들이 꿈도 꾸고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나 현실에서는 늘 벽에 부딪힙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해 내겠다고 자신한다 하더라도 막상 책임을 맡아서 하다보면 쉽지않습니다. 무엇인가 이루어 내겠다고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때 조금만 옆을 돌아보며 함께 걸어갔다면 좋았을텐데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마석에서 8년정도 살면서 차산리 고개를 넘어가려 할 때 항상 지나치던 묘역이라 궁금했습니다. 이곳은 어떤 사람이 누워 있을까? 기계유씨는 한 집안인데 집성촌처럼 모여사는 곳인가? 그래서 기계 유씨의 조상인 유강, 그리고 유만주라는 분,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다는 문장가 유한준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



"일이란 가까우면 상세하고 조금 멀어지면 희미해지고, 이미 멀어졌으면 잊어버린다. 진실로 일기는 가까운 것을 더욱 상세하게 하고 조금 멀어진 것을 희미하지 않게 하고 이미 멀어진 것을 잊지 않게 한다. 일이 법도에 어긋나지 않은 것은 이것으로써 따를 수 있고, 과실 또한 경계할 수 있다. 일기는 이 몸의 역사이니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유만주)


유만주는 당대 명문장가였던 유한준과 순흥 안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는 백취, 호는 흠영, 흠고당, 흠영외사, 봉해외사다. 1767년 이후에는 통원이라는 호를 함께 사용했다. 유만주가 속한 기계유씨는 영,정조대에만 17명 넘는 당상관을 배출한 문인 관료 집안이었다. 또한 유만주의 증고조인 유황은 월사 이정구의 문인이었고 고조 유명뢰는 송시열의 문인이었으며 그 후 후손들이 대대로 벼슬에 올라 노론 벌열가로 성장했다. 기계 유씨는 벼슬과 학문, 묵학, 서화에 있어서도 특출한 인물들을 길러낸 명문가였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기에 많은 서책과 서화를 축적할 수 있었고, 특히 집안 대대로 풍부하게 보유해 온 각종 서책은 유만주가 박학의 학문을 추구하고 평생 광적인 독서 편력을 보이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가풍은 유황의 고조인 숙민공 유강(1510-1570)에게서 비롯된 면이 크다.

 

32세인 1541년 문과에 급제해 대제학을 지낸 유강은 1558년 사은사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많은 서책을 구입해와 숙민서목이라는 장서 목록을 만들었다. 이 장서 목록은 친족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던 듯, 유만주 역시 이 목록을 구하고자 여러 번 탐분했으며, 결국 1786년 친척을 통해 숙민서목을 빌려볼 수 있었다. 이 자료가 유강이 중국에서 사온 책을 기록한 것이었음을 감안할 때 유만주는 숙민서목을 통해 선조들의 손을 거쳐간 다양한 지식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유강 외에 유만주의 학문과 예술 취향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은 부친 유한준이다. 유한준은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루며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문인이었다. 또한 서울 옥류동 주변에 세거한 명문가 자제들과 친분이 깊었고 서화 감평에도 활발한 족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천문, 지리, 역사, 골동 등 여러분야를 아우른 박학풍을 아들에게 전수해 주었다. 유한준이 경주 김씨, 의령 남씨 등 당대 명문세족의 자제들과 모임을 가진 장면을 가진 오로도는 유한준 생존 당시 기계 유씨의 사회적 위상과 교유관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일기로 본 조선, 규장각 교양총서 08)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기록없이 하루를 보내곤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상세한 기록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개인의 역사가 되고, 미래가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일상의 기록에 소극적입니다. 그나마 요즘 SNS라는 공간에 쉼없이 개인의 기록을 올려 소통하기에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가끔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등장하는 몇년 전의 기록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기능 때문에 과거의 소중한 추억이 되새겨지곤 합니다.


한 집안을 이룬다는 것

한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

무엇보다 함께 일을 추진해서 미래를 만들어 가려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인내와 지속성 그리고 신뢰입니다.


사람은 쉽게 인식됩니다.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않을 때

돈을 빌렸는데 갚지 않을 때

시간을 내서 봉사하기로 했는데 연락없이 오지 않을 때


신뢰는 한 순간에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원치 않은 결과에 좌절하기도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망이 넓어지면서 늘 경계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하는데 가장 편하고 가까운 사람에게는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제 삶이 그랬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부터 잘해 나가고 그것이 이웃에게 퍼지도록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날이 급격하게 차가와 졌습니다.


횡성에서는 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입니다.


마음까지 차가와지지 않도록 다시 힘을 내 봅니다. 여러가지 스트레스가 밀려와도 담담한 하루를 보내려합니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매 순간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세일 수 있으니까요.
 

 

* 유강 및 기계유씨 묘역


차산리는 고종의 능을 안치할 장소로 물색되었던 곳이기도 한데 그 자리가 학이 날아가는 형국이다. 화도읍 차산리 775-4번지에 있는 숙민공(肅敏公)[휘 강(絳)], 이하의 후손인 자산공[휘 영( 泳)], 선무랑공[휘 대의(大儀)], 승지공[(휘 헌(櫶)], 등과 기계 유씨 선조 9기의 묘가 세 곳에 위치해 있는데 타원형으로 늘어진 모습이 어머니의 젖가슴 모양이다. 차산리에서 많은 인물이 나온 이유도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듯이 이 기운을 받기 때문이라고 하며, ‘일문 삼감사(一門 三監司)라 하여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 둘이 감사를 지낸 적이 있는데 묘의 위치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입구의 삼감사 묘는 감사공(휘 성증(省曾)), 충간공[휘 황(榥)], 대사헌공(휘 철), 군수공(휘 희증) 등 벼슬을 했던 네 분의 묘를 시작으로 하여 네 줄기로 뻗어 있는데, 각각 후손들의 묘를 차례로 산 전체에 모신 전형적인 사패지(賜牌地)이다. 묘를 모신 산의 정면으로는 운길산이 보인다. 재실은 최근에 다시 건립한 것이다. 원차산리 일대에는 지금도 많은 기계 유씨들이 살고 있다. 그러면 기계유씨는 언제부터 이곳이 정착하게 되었는가? 아래는 남양주에 세거해온 주요 가문들의 입향시기 이다.


<남양주 각 성씨별 입향 시기>


차산리라는 지명유래는 차산리에 있는 고개인 '차유령(車踰領, 수레 넘이 고개)'라는 이름이 있다. 1570년(선조3) 4월 10일 전 자헌대부(資憲大夫) 호조판서(戶曹判書) 숙민공(肅敏公) 유강(兪絳)이 돌아가시자 묘소를 이 고개 근처에다 정하고 장사를 지냈다. 이후 1639년 증손 유성증(兪省曾)공이 강원도 관찰사로 재임할 때에 숙민공(肅敏公)의 산소에 석물 및 신도비를 세우는데, 와부읍 덕소로부터 우마차로 운반하여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이후부터 '차유령(車踰嶺)'또는 '수레넘이 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이름이 곧 행정구역 '차산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맹골 남서쪽 고래산에 있는 바위는 모양이 베틀처럼 생겨서 '벼틀바우' 또는 '베틀바우'라 불린다. 이와는 달리 노인들이 이 바위 근처에서 베틀을 짰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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