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10 역사문화탐방이야기(18) - 수석리토성과 문강공 조말생 후손 묘소를 다녀오다 (남양주시 수석동)

by 문화촌 posted Apr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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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0 역사문화탐방이야기(18) - 수석리토성과 문강공 조말생 후손 묘소를 다녀오다 (남양주시 수석동)

 

문촌 장익수(메인즈)

 

매번 지나 다니는 길에 수석리 토성 이정표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을 오릅니다. 남양주시 수석동에 위치한 작은 토성... 140여미터 길이의 토성 이정표 시작점에 서 있어보니 한강을 배경으로 구리와 남양주로 향하는 요충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함께 동행한 짱이(키우고 있는 애견)는 신났습니다. 올라가면서 자신의 영역표시도 하고 킁킁거리며 무엇인가를 끊이없이 찾기도 합니다. 

 

산속에서의 자유로움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니 마음이 흐믓합니다. 애견을 키우다보면 드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차에 치일까 사람에 당할까 주변의 민원 소리에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일들을 많이 경험하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을 찾아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곳에 데려다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짱이는 알 것입니다.  

 

수석리 토성을 향하는 길은 봄의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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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리토성(水石里土城)
경기도기념물 제94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 산2-2번지이다.

수석리토성은 ‘토미제’라 부르는 한강 옆의 낮은 산꼭대기에 있는 토성으로, 한강을 건너는 나루를 지키기에 알맞은 곳에 있다. 이곳에서는 주위의 아차산, 이성산, 남한산, 천마산, 수락산과 마을 앞의 나루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러한 지세는 이곳이 성을 만들 당시 한강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요충지대임을 알게 한다.

전체 길이 145m의 반달형 토성 안에는 13.5m×5.7m×4.8m의 높은 터가 있는데, 가운데 부분이 약간 우묵하고 그 가장자리에는 불에 탄 돌들이 있던 것으로 보아 봉화를 올렸던 자리로 추정된다. 성터 주변의 절개지나 구덩이에서는 회흑색의 연질토기 조각들과 어골문 계통의 기와조각 등 고구려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 유적은 삼국시대에 백제가 쌓은 토성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백제가 한강유역을 빼앗긴 후에 고구려와 신라 등 점령군의 군사적 요충지로 봉수를 올리는 등 관측과 통신 기능을 담당하였던 곳으로 보인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 남양주시청)

 

 

수석리 토성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막상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발견 당시 출토된 유물과 지형을 자세히 설명하는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이동합니다. 유적지들을 관리하려면 국가 지원이 절대적인데 남양주시의 정책 결정자들이 전폭적인 국가 지원이 가능하도록 애써야 할 것입니다. 

 

수석리토성 안내판에 적힌 글을 읽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다들 똑같이 느낄 것입니다.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고 올라왔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 그만큼 수석리 토성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던 것입니다. 역사문화 탐방을 하면서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은 정말 생뚱 맞을 정도로 정보가 절대 부족합니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강쪽으로 50여미터 이동하니  규모가 큰 묘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양주 조씨의 선영이었습니다. 

 

조선 세종의 통치시에 등장하는 조말생의 권력의 크기는 그의 묘소 규모로 보아 조선왕조를 호령하던 왕의 무덤과 비견될 정도로 웅장합니다. 한때 조말생은 뇌물 수수가 발견되어 관직을 잃고 한직에 물러나 있었으나 세종의 보호로 다시 중앙정치에 오게 됩니다. 그런 조말생의 묘소 규모에 비하면 사릉에 잠든 광혜군묘는 초라하기 그지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조말생의 후손 조무강과 숙혜옹주를 포함한 후손들이 잠들어 있는 곳.  묘소 규모에 놀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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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혜옹주(淑惠翁主, 1486년 ~ 1525년)는 조선의 옹주로 조선 제9대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5)의 서7녀이며, 어머니는 숙용 심씨(淑容 沈氏, 1465~1515)이다. 한천위(漢川尉) 조무강(趙無疆)에게 하가하여 1남를 얻었다.

 

양주조씨
세도 가문은 아니나 조선 중기 이후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시조 조잠(趙岑)의 증손대(조선 전기)에서 정평공파(靖平公派:啓生)·문강공파(文剛公派:末生)·제학공파(提學公派:從生)·강화공파(江華公派:惟中)의 4형제로 대별된다. 그러나 정평공파와 제학공파는 1453년(단종 1)의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김종서(金宗瑞)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함으로써 현재 그 후손이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한다. 따라서 양주조씨의 숱한 인물들은 문강공 말생의 후손으로서 오늘날 문강공은 사실상 중시조가 된다고 한다. 

 

양주조씨 일문이 결정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은 말생의 손자인 정(挺)이 1619년(광해군 11)에 우의정에 오름으로써 시작된다. 인조의 국구(國舅)가 된 창원(昌遠), 현종 때의 형조판서 계원(啓遠)에 이어, 계원의 아들 7형제에 이르러서는 숙종·정조 시대에 걸쳐 그 세력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숙종 때에는 같은 집안이면서도 노·소론(老少論) 양파로 갈라져 당쟁의 극렬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7형제 중 둘째 구석(龜錫), 셋째 희석(禧錫), 넷째 사석(師錫), 다섯째 가석(嘉錫) 등 4형제의 후손이 번창하였는데, 희석의 후대는 노론(老論)으로, 사석과 가석의 후대는 소론(少論)으로 갈라져 집안끼리 당쟁을 벌였다. 대표적 인물로는 을사조약 때 기울어지는 국운(國運) 앞에 충의를 다하다 자결한 병세(秉世)를 들 수 있다.

 

출처_ 위키피디아

 

 


우리가 권력에 무릎꿇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권력은 신기루입니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과 악수하면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의 지위로 올라가 있다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유명한 사람과 나란히 사진을 찍어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높은 분과 친구가 되었다라고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어느 누군가와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아는 사람이 권력도 있고 재력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돈과 권력으로 만든 친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과 권력은 영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무릎꿇고 친구가 되어주어야 하는 사람은 정말 볼품없는 가난한 이웃들입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입니다. 그런 분들과 기꺼이 친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더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한 목사님이 베푼 따뜻한 마음으로 노인 한 분의 삶을 바꿔 놓은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첫 월급으로 식사 대접을 해야겠다는 그런 선한 마음이 사람에게 감동을 줍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동안의 삶이 나를 향하여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타인을 향하여 집중해야겠습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소유
나만의 이익을 벗어 던지고, 누군가의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 훗날 삶을 되돌아 보아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하는 일은 내 옆에 있는 이웃의 아픈 마음을 닦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달려가야겠습니다. 

 

수석리 토성과 조말생 신도비가 있는 묘소를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권력도 얻어야겠고 재물도 얻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을 얻고 싶어집니다.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장사를 한다면 물건을 팔아 재물을 얻지만
선행을 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봄바람이 차갑습니다. 

 

오늘 하루 애써 경쟁하는 것이 타인을 향한 선행이 되기를 바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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