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21 역사문화탐방이야기(8) 마재성지를 찾아서 (남양주시 조안면)

by 문화촌 posted Jan 2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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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21 역사문화탐방이야기(8) 마재성지를 찾아서 (남양주시 조안면)

정약용 선생의 형인 정약종, 그리고 두 사람의 형인 정약전

정약용은 한국사회가 배출한 세계적 인물입니다. 유네스코 관련 기념일 4대 인물로 선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대부분 알려진 것이지만 한번 더 거론해 봅니다. 

2012년 다산 탄생 250주년은 ‘2012년 유네스코 관련 기념일(anniversaries with which unesco is associated in 2012)’로도 지정돼 전 세계인이 기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유엔 산하 교육 문화 과학 기구인 유네스코는 2004년부터 유네스코의 이념 가치에 맞는 세계사적 사건이나 위인의 기념일을 ‘유네스코 관련 기념일’로 선정해왔습니다. 우리나라 위인이 세계기념일에 포함된 것은 다산이 처음입니다. 

2012년 당시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프랑스 1862~1918) 탄생 150주년, 
장 자크 루소(프랑스 1712~1778) 탄생 300주년, 
헤르만 헤세(독일 1877~1962) 사망 50주기 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사망 250주년

이 4명이 유네스코 관련기념일에 나란히 지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약용의 위치가 어떤지 짐작이 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인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정약종입니다. 

정약종(丁若鍾, 1760년 ~ 1801년 4월 8일)은 조선 정조 때의 학자이며, 기독교 순교자이다.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이다.

정약용의 셋째 형이기도 한 그는 이익 밑에서 서학을 공부했으며,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가 되어 1795년에는 이승훈과 함께 청나라 천주교 신부 주문모를 맞아들였고, 권일신·이덕조 등과 신앙 실천운동에 가담하여 인습 타파와 계급 타파의 사회운동을 촉진하며 천주교 전도에 힘썼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회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교하는 데 큰 구실을 했는데 특히 한문본 교리책에서 중요한 것만을 뽑아, 누구나 알기 쉽도록 우리말로 《주교요지》라는 천주교 교리서를 지어, 전교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들 정철상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으며, 그도 이승훈·최필공·최창현 등과 함께 서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위키피이아에서 (더 자세한 인물연구는 http://tessinozona.tistory.com/203 를 참조하면 된다.)



다산(열수) 정약용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를 가기 전 한적한 마재라는 마을에 위치한 마재성지는 정약종이 천주교를 지키다가 순교한 것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곳입니다. 작지만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정씨 일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형 정약전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로 개종했던 정약용은 신해박해 때 가정이 파탄날 정도로 풍지박산의 상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지금의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 형 정약전은 당시 이교도로 멸시받았던 천주교 신자로 순교하게 됩니다. 

현재 정약전은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 묻혀 있습니다. 

그래도 마재라는 곳에서의 기운이 결국 국내 천주교의 뿌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돌이켜 보면 항상 기록된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하는가 봅니다. 정약용은 기억하지만 정약전을 기억해 내는데는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마재성지를 돌아보며 정약전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실학박물관에서 문화해설사 자원봉사를 하면서 매번 지나치기만 해서 잘 몰랐던 이곳에서 살아간 순교자의 길을 돌아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순교의 길을 택하느냐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버리면서 목숨을 이어가느냐

참으로 어려운 일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약전은 목숨을 버리고 순교의 길을 택했으니 그가 앞으로 가야할 미래를 담보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됩니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기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통기타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즐겨 부르곤 합니다. 

"내게는 소중했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가사의 내용에 주인공은 연인과 헤어지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 연인은 같은 추억을 만들며 같은 꿈을 꾸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니 헤어지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실 어떤 그룹이나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그곳을 떠나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곳과 전혀 상관없는 나의 영역이 새롭게 개척되어 가게 됩니다. 만남과 헤어짐은 인생의 반복적인 일이지만, 이왕이면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끝도 아름다와야 할 것 같습니다.

한동안 저에 대한 나쁜 소문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세워졌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 나쁜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모르나,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에게 괴테의 말을 전해 주더군요. 


"자신이 시대를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쉽게 살아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면서 언젠가 자신의 진실과 정의가 퍼질 것이라고 믿어라! 그동안 우리는 살아야 하니 세상의 변화에 상냥하게 자신을 적응시켜라! (괴테)"


그렇습니다. 

비록 오늘이라는 시간이
절망의 언어로 된 이야기를 통보 받았다 할지라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입니다. 우리들 기억속에 서로 좋은 추억으로 남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외에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충분히 용납하고 남을 만큼의 관용으로 하루 하루를 이어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순교를 선택한 정약전(아우구수티노)의 뜻을 되새김질 하는 날은 마음이 울적할 때 자주 갖고 싶어집니다. 

가장 매서운 한파가 곧 다가온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으로 한파를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새벽 미명을 뚫고 들어오는 미세한 겨울바람을 맞으며...호평동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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