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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18 모잠비크 역사문화탐방이야기(2) - 포르투갈의 식민지 500년 그리고 독립...1975년

드디어 주말입니다.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주말이면 쉬지 않고 꼭 한번은 역사문화탐방을 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 누군가의 힘이 되는 길을 가고 있는중입니다. 그 길은 잘 보이지 않는 길이지만, 꼭 필요한 길이기도 합니다.

떠나오기 전 불렀던 이승철의 "그런 사럼 또 없습니다."

황손 이홍(현재 남양주 거주, 친딸 고2와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음)의 친 어머니인 황비 독고정희의 학보에서 얻은 사진 (황비님은 황태자 이석과 결혼했으며, 당시 무용실기 1등 수석입학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 이후 이석과 이혼 후 미국에서 생활하다 이홍이 중학교 때 다시 한국으로 와서 이홍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화문화예술단"


추진하고 있는 황실문화선양회의 재단법인 설립추진 사업의 하나인 유관기관으로 전국공연전문 예술단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제가 제안한 단체이름으로 기존 운영되던 예술단에 받아들여져 개칭 후 함께 해 왔습니다. 트롯 분야 전문가수들과 유능하신 단장님과 함께 시작했으나 제가 2월 중순 아프리카에 일이 있어 와 있는 동안 사정상 함께 하던 단장님께서 다른 이름의 예술단을 설립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능한 후임자를 물색하기 전까지 제가 이화문화예술단을 맡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예술단을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느껴집니다. 그동안 문화기획은 밥먹듯 해왔지만, 막상 예술인들을 어떻게 무대에 세우고 어떻게 개런티를 보장해 주어야 할지...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생각해보고, 정마애 지휘자님께 자문도 구해 보았습니다. 무엇이든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확 다가오는 날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어느 지역을 가든 피곤해도 집안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그 지역과 그 나라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지나온 역사를 알아야
그 나라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를 알아야 그 사람을 알 수 있고 이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평가해 버리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겪은 그 사람은 정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이가 전달해준 것을 진실로 간직할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짧은 기간동안 얼굴 맞대고 이야기 한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역사는 사관의 기록으로 쓰여지고 전해지기 때문에 다른 시선으로 바라 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사람에 대한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바라보는 그 사람 참 괜찮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을 몹시도 싫어한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한번 되 새겨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해 직접적으로 겪어 보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저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집안에 신경 좀 쓰고, 아이들에게 잘하고, 돈도 집에 많이 벌어다 주어야 한다는 등의 충고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이 저에게는 도움이 안되는 말들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런 일들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소홀히 한다는 것도 사람마다 평가가 다릅니다. 누구는 일주일에 한번 집안일 중 설겆이를 해주면 엄청 못한다 하고, 누군가는 밖에서 회사일하고 집에 와서 설겆이는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설겆이를 전혀 안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적어도 5년 이상은 지켜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분이 그랬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기록이 중요하고 명분을 세워주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황실문화선양회는 그럴만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조선의 마지막 공주 이홍(혹자는 공주가 아니라 하지만...사실 궁안에 살면 당연히 공주입니다. 혈통상...할아버지 의친왕이 독립운동에 자신의 재산과 마음을 바쳤듯이...그녀는 그런 혈통을 가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에 대한 저의 마음이자 작은 노력을 쏟는 단체입니다. 제대로 만들어서 꼭 대한민국의 따뜻한 품에 자신을 안기고 그 따뜻함 때문에 느끼는 행복감을 얻게 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를 여행하는 일이 즐거운 것은 그만큼 순박한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초의 식민제국이자 마지막 식민제국이기도 한 포르투갈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은 1961년부터 1974년까지 포르투갈 제 2공화국 (이스타두 노부)과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 간에 벌어진 군사적 충돌을 의미합니다. 포르투갈에서는 해외전쟁(Guerra do Ultramar), 옛 식민지 국가에서는 해방전쟁(Guerra de Libertação)이라고도 부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인도의 고아 합병도 이 전쟁에 포함됩니다. 그런 거대 제국을 이룬 것은 대영제국을 꿈꾸던 영국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입니다.

1400년대부터 다문화적, 다인종적, 범대륙적이라 칭했던 포르투갈이 식민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지원하는 본국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즉, 1974년 포르투갈이 모잠비크를 포기하고 1975년 하룻만에 떠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결국 본국에서 터진 구테타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결국 독립이 되었고 , 공산주의 기반으로 1975년 독립한 모잠비크의 당시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을 것 같습니다.


코이카 사업의 상당부분은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습니다. 즉, 국위선양입니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첨단 기술 제품과 기술을 제3세계와 가난한 나라에 베풀어 주는 일인데, 그 목적은 분명히 있겠지만, 제가 평상시 늘 생각하던 것은 그런 첨단시설 인프라를 설치해주고 결국 중요한 후속조치...교육이라는 알맹이를 빼고 철수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있는 현지인들은 그 비싼 장비를 괜히 건들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큰일나기때문에 아예 보자기를 씌워 먼지만 쌓이게 합니다.


포르투갈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모잠비크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것 저것 시설 인프라를 많이 투자했다가, 막상 본국에 문제가 생기니까 하룻만에 철수해 버린 것입니다. 500여년동안 통치해 오던 시스템이 한꺼번에 없어져 버렸을 때 오히려 불안정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차라리 독재시스템이라도 작동한다면 안정적일텐데...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시스템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무정부상태와 같은 혼란이니까요.


기회의 땅 아프리카

그리고 그 중의 한 나라 모잠비크

그 역사유물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느꼈습니다.

사람도 나라도 역시 필요한 것은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라는 것을요...우리가 누구를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언젠가는 천국 계단을 밟고 그 입구에서 만나든지 생을 마감하기 전 그 아름다웠던 추억을 가지고 다시 만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무척 맑은 모잠비크입니다. 오늘은 그 청명한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살고 싶은 제 마음을 기록해 봅니다.

 



아래는 나무위키에서 찾아 낸 자료입니다.

모잠비크에서는 1964년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초기엔 공산주의 계열의 게릴라 프렐리모의 세력이 위협적이었다.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중부의 잠베지 강 유역까지 전쟁이 확산되었으나, 모잠비크 주둔 포르투갈군 병력이 소수였던 탓도 있어 프렐리모가 당분간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전열을 재정비한 포르투갈군은 잠비아 ・말라위와의 국경을 봉쇄하여 양면에서 프렐리모를 압박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카울자 드 아리아가 준장의 지휘하에 1970년 6월, 북부지방에 산재한 프렐리모 기지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고르디우스의 매듭 작전'이 실행되었다. 이 작전의 결과, 프렐리모는 와해 직전의 상황까지 몰린 반면, 모잠비크 전선에서도 포르투갈의 주도권 장악이 확정되었다.

앙골라 전역과 마찬가지로 모잠비크에서도 현지인이 중용되었으며, 현지인 지원자로 구성된 특수작전부대가 운용되기도 했다. 포르투갈 제국은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해 새로운 도로, 철도망, 다리, 관개시설, 학교, 그리고 병원들이 모잠비크에 건설되었다. 포르투갈은 또한 카호라 바사 댐 건설을 시작했고, 이것은 포르투갈이 현지인들에게 약속한 '문명화'가 진행 중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요소였다. 자연스럽게 카호라 바사 댐 건설 현장은 게릴라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테테 주의 카호라 바사 댐 건설엔 모잠비크 주둔 포르투갈군 병력의 절반이 투입되었으며, 이곳은 프렐리모의 주요 공격 목표였으나, 정작 공격은 번번히 실패로 끝났다. 전쟁기간을 통틀어, 프렐리모가 도시를 공격하여 성공한 것은 단 한 차례 뿐이었다. 73년까지 포르투갈군은 영토의 대부분을 수복했다.

그런데 모잠비크 전선에서 눈부신 전과를 거둔 아리아가 준장은 74년초, 갑자기 경질되고 만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아리아가의 경질은 카에타누 수상이 '쿠데타 방지'를 위해 내린 조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카에타누 정부는 아리아가 준장이 해외 식민지를 수호하고 포르투갈 좌파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한 보수-우파 성격의 쿠데타를 조직하려 했다고 의심했다. 그러나 결국 그해 4월, 아리아가 준장의 우려대로 좌파 군인들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73년, 모잠비크의 FRELIMO 세력은 대부분 변두리 지역으로 후퇴했으며, 내부 권력 투쟁 끝에 온건파가 쫓겨나고 강경파인 사모라 마셸이 FRELIMO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게릴라 세력은 시민들의 포르투갈 정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기 위해 민간인 거주지에 대인지뢰를 매설했으며 일부 포르투갈 이주자들은 리스본의 카에타누 정부에 전쟁을 빨리 끝내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게릴라 세력이 지탄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FRELIMO가 포르투갈군과의 전면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세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포르투갈군이 개시한 고르디우스 매듭 작전의 대성공과 1972년에 이루어진 테테 주에 대한 FRELIMO 총공세의 대실패로 모잠비크 전역은 안정되어갔다.

1974년 4월 25일 새벽, 좌익계열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된 '국군 운동'(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MFA)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리스본과 포르투갈 전국의 전략 요충지를 점령했다. 초기에는 일부 병력만이 쿠데타 세력에 동조했으나 점차 그 세가 불어났으며 정부에 충성하는 부대는 병력을 출동시키길 꺼려했다. 카에타누 총리는 곧 투항하고 쿠데타 세력에게 추대된 스피놀라 장군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소위 말하는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전쟁과 전시 체제에 지친 리스본 시민들은 군인들의 궐기에 환호했다.

카네이션 혁명에 의한 혼란은 식민지 주민과 군 관계자의 대규모 탈출을 초래하였다. 최대의 식민지인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는 백인과 흑인을 불문하고 총 1백만명 이상의 주민이 떠났는데, 이 일련의 대탈주는 역사상 평시에 행해진 집단 이주 가운데서도 최대 규모였다.

모잠비크에선 집권 모잠비크 해방전선 (FRELIMO)의 강경좌익노선에 우파계열 모잠비크 민족저항운동 (RENAMO)이 반발해 내전을 벌였다. 앙골라와 마찬가지로 FRELIMO는 이웃 공산국가들과 공산진영의 지원을 받았으며 RENAMO는 로디지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백인 정권이 집권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원을 받았다.

모잠비크는 독립 후 내전 외에도 여러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불경기 및 사회적인 퇴행, 공산주의자들의 전체주의적인 행태, 뇌물, 빈곤, 경제적 불평등, 실패한 계획경제가 혁명 초기의 정열을 실추시켰다. 게다가 포르투갈인 숙련노동자들이 출국한 후 모잠비크는 사회기반 시설의 정비 및 보수에 기술자가 턱없이 부족해져 모잠비크 경제가 추락하는 원인이 되었다. 내전으로 인해 모잠비크에서 약 100만명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고, 500만 명 이상의 실향민이 생겨났으며 가족과 분리된 어린이도 250만이 넘었다.

출처_ 나무위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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