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전망대와 용양보
평화로 가는 길 (59)
김승국(평화마을 화내천 대표)
9월 26일. 철원 김화읍에 있는 승리 전망대에 오른 뒤, 생창리 민북마을에 있는 DMZ 생태평화공원에 가서 용 양보 일대를 둘러 보았다.
(승리 전망대 입구의 필자)
생창리 민북마을
생창리 민북마을은 전형적인 최전방 농촌 마을이다. 이 마을의 동편 화강 건너를 개활지로 지뢰 지역과 평야 지대가 펼쳐진다. 지난해 화강이 범람하여 마을의 일부가 물에 잠겼는데, 수해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생창리에 있는 DMZ 생태평화공원 방문자 센터 앞에 선 필자)
이 마을의 지난 모습을 전시하는 ‘사라진 마을 김화 이야기관’에 들어가 보니, 이 마을에 소규모 백화점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생창리(읍내리)는 국도 5호선과 43호선이 만나고 금강산 전기철도가 지나가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물류 교통의 중심이였다. 그러나 전쟁의 화마을 피할 수 없었는데,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 1970년 10월 30일 재향군인 100세대가 입주(재건축)한 선전마을(북쪽의 오성산에서 보이는 선전마을)로 자리 잡았다. 이 지역 일대는 한국전쟁 때 중국군과 격전을 치른 유명한 전투지역으로, 남쪽에서는 저격능선 전투라고 부르지만 중국에서는 상감령 전역(上甘嶺戰役)이라고 칭한다. 중국의 방송 매체에서 한국전쟁 때의 승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상감령 전투이다.
전쟁의 포화가 멈춘 뒤의 마을 주민의 흩어짐과 무관하게 자연은 지뢰밭 속에서 숨을 쉬면서 오늘의 용양보 습지를 이루어 생태관광지로 거듭났다. 지뢰밭과 공존하는 생태 보금자리로 탈바꿈했다.
용양보 습지
용양보는 DMZ 남방 한계선 안에 조성된 농업용 저수지이다. 용양보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되었던 금강산 전철의 교각(사진 오른쪽)을 사용하여 건설되어 보(洑)이다.
(금강산 철도)
이 보 위에 금강산 다니던 철교가 세워졌다. 지난 70년간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용양보는 자연스럽게 습지가 되었다. 이 습지의 물속에 떨어진 왕버들이 군락을 이루어 물고기들의 서식처가 됨으로써 물 반(절반) 고기 반의 자연 생태계를 형성했다. DMZ 경계근무를 섰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있었는데,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낡고 떨어져 나간 끝에 이제는 (지지대가 되는) 철선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용양보에는 계절별로 가마우지⦁두루미⦁고니 등의 철새들이 찾아 온다. 아래 사진의 출렁다리 철선 위에 가마우지가 앉아 있다. (2022.9.28)
(용양보 전경)